조지 웨아: 슬럼에서 축구 스타플레이어로, 그리고 대통령까지.

[기사제공 : 아프리카 히어로즈 1기 김성준 기자]
기사입력 2019.05.03 11:47 조회수 189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 기사내용 프린트
  • 기사 스크랩
  • 기사 내용 글자 크게
  • 기사 내용 글자 작게

image (1).png

 

 


라이베리아의 늪으로 둘러쌓인 슬럼가에서 태어난 조지 웨아(George Weah)는 뛰어난 축구 실력으로 파리와 밀란, 런던 등지에서 활동하는 스타플레이어였으며 FIFA(국제축구연맹) '올해의 세계적 선수' 상을 수상한 첫번째, 그리고 여전히 유일한 아프리카 사람이다.

 

하지만 이것은 그의 인생 이야기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다. 라이베리아의 항구 도시 몬로비아(Monrovia) 변두리 맹그로브 습지 위에 지어진 가난한 동네에서 자란 그는, 2017년 10월 10일, 라이베리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는 경영학 학위가 있고 세계 은행의 전 컨설턴트였던 라이베리아 현 부통령을 넘고 승리했는데, 이 승리는 변변치 않은 시작에서 가장 중요한 자리까지 갈 수 있게 도와주는 스포츠 명예의 힘을 보여준다.

 

웨아는 정치권에서 활동하는 첫번째 운동선수는 아니다. 복서 마니 파퀴아오(Manny Pacquiao)는 필리핀의 상원의원이었고, 전 올림픽 육상 챔피언이자 현 IAAF(국제 아마추어 육상 경기 연맹) 회장인 세바스찬 코(Sebastian Coe)는 영국의 의원이었으며, 전 크리켓 선수 임란 칸(Imran Khan)은 파키스탄 야당의 당수였다. 다른 사례들도 많다.

 

하지만 라이베리아에서 가장 유명한 운동선수인 웨아는 가장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 어려움도 많이 남았다.

 

올해로 51세(2017년 기준)가 되는 전 스트라이커, 이탈리아의 거대 구단 AC밀란에서 1990년대에 활동하면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조지 웨아는 여전히 내전의 상처를 안고 있는 나라를 이끌어가야 한다. 웨아의 전임자 중 한명인 찰스 테일러(Charles Taylor)는 잔혹한 반군의 군 지도자로서 전범으로 기소되었다. 라이베리아처럼, 서아프리카의 연안에 있는 나라들은 미국에서의 노예 생활에서부터 자유로워진 사람들이 나라를 세웠고, 폭력을 중심으로 탄생한 경우가 많다. 내전들은 2014-15년에 발생한 에볼라 바이러스 사태로 인해 겨우 잠재워졌다.

 

게다가 웨아가 몬로비아의 클라라 타운(Clara Town) 슬럼가에서 태어날때부터 느꼈던 끝도 없이 계속되는 가난도 있다.

 

고생을 직접 경험한 그 친숙한 경력에 힘입어 조지 웨아는 대선 2차 투표에서 상대를 큰 차이로 이겼다. 조지 웨아는 비록 전 축구선수로서 정치 경험도 부족하고 40대가 되어서야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을 땄지만 라이베리아의 청년층은 그에게 믿음을 실어주었다.

 

청년층 중 대다수는 웨아가 축구선수로 활동할 당시를 기억조차 못할만큼 어렸지만, 그의 업적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1994년에 파리 생제르망에서 우승을 이끌고, 1994-1995년 챔피언스리그에서 최다골을 기록했으며, AC밀란에서 한번 더 우승하고, 1995년에는 FIFA '올해의 세계적 선수' 상과 발롱도르(Ballon d'or; 전 세계 축구선수 중 뛰어난 활약을 보여준 개인에게 수여하는 상)를 수상했다.

 

웨아가 다른 라이베리아 사람들처럼 가난한 처지에 있었다는 것이 중요한 요인이었을지도 모른다. 축구가 그를 유명하게 하고 부자로 만들었다.

 

라이베리아의 웨아는 꾸준히 월드베스트 플레이어 목록에 뽑히고 있으며, 그가 속한 대륙에서 유일한 것과 더불어 이탈리아, 스페인, 독일, 브라질, 아르헨티나에서 좋은 경기를 치뤘다. 강하고 빠르고 다양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그는 수많은 골을 기록했다.

 

그의 최고의 경기는 AC밀란 시절 베로나(Verona)와의 경기였다. 웨아의 두 아들 역시 축구선수가 되었다. 그 중 한명인 티모시 웨아(Timothy Weah)는 미국에서 열린 17세 이하 월드컵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쳐 유명해졌다. 올해 30세가 되는 다른 한명인 조지 웨아 주니어(George Weah Jr.) 역시 미국에서 유스 인터네셔널(youth international) 선수였다.

 

유럽의 빅리그에서 뛰는 아프리카 사람은 요즘엔 새롭지 않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 웨아가 슬럼가에서 스카웃되어 유럽에서 뛰게 된 사례는 거의 없었다. 특히 아프리카에서 축구 시스템이 잘 되어 있는 나이지리아, 카메룬, 세네갈, 코트디부아르에서도 아닌, 아직까지도 국가대표팀 결성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라이베리아에서 이런 사례가 있었던 것은 굉장히 특이한 경우이다.

 

프랑스와 이탈리아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영국 프리미어리그의 첼시와 맨체스터 시티에서도 활동한 웨아는 아프리카의 첫번째 슈퍼스타였다. 그는 1996년에 '세기의 아프리카 선수'로 네임드됐다.

 

웨아는 월드컵과는 인연이 없었다 (그의 라이베리안 동료들이 그만큼 좋지는 못했다.) 하지만 웨아는 2015년 FIFA와의 인터뷰에서 그의 성공은 항상 라이베리안 사람들에게 바쳐졌다고 말한다.

 


웨아는 "그들은 저와 함께 유명해졌고, 라이베리아도 이제 지도에 나타날 수 있게 되었어요" 라고 말했다.

 

월드컵 진출 캠페인을 거치며 라이베리아 대표팀에 개인적으로 자금을 지원하기로 한 웨아의 결정은 그의 동포들에게 더욱 환심을 사는 요인이 되기도 했다. 지난 주(2017년 10월 10일), 그 동포들은 빈민가에서 출세하여 하버드 교육을 받았으며 노벨 평화상을 수상한 엘렌 존슨 설리프(Ellen Johnson Sirleaf)만큼 더 나은 것에 대한 희망을 줄 수 있을 것 같은 전직 축구 스타에게 그들의 꿈을 걸고 웨아 대통령을 선출했다.

 

몇 년 전 웨아가 정치생활을 막 시작했을 때 그의 젊은 지지자들 중 한명이 "우리는 그가 청년들과 서민들을 돌보기 때문에 그를 뽑았고, 그리고 그가 대통령이 되면 우리를 위해 축구 아카데미를 열어줄 것이다"라고 선언했는데, 이런 것들이 (웨아가 대통령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징후였음이 틀림없다.

 

[유은서 기자 afn@africanews.co.kr]

위 URL을 길게 누르면 복사하실 수 있습니다.

  • 페이스북으로 보내기
  • 트위터로 보내기
  • 구글플러스로 보내기
  • 카카카오스토리로 보내기
  • URL 복사하기
<저작권자ⓒ아프리카뉴스 & africanews.co.kr 무단전재-재배포금지>
댓글1
  •  
  • 빅뱅에이전시
    • 빅뱅에이전시가 먹튀 책임지는 놀이터에서 주영욱 한혜진이 자사고에서 축구 게임해서 로또 맞은 곳. bb-agc.com
이름
비밀번호
신문사소개 | 광고안내 | 제휴·광고문의 | 기사제보 | 다이렉트결제 | 고객센터 | 저작권정책 | 개인정보취급방침 | 청소년보호정책 | 독자권익보호위원회 | 이메일주소무단수집거부 | RSS top